사라진 블랙박스와 시신들
1985년 1월 1일 새해 첫날 19명의 승객 및 10명의 승무원 등 총 29명을 태운 이스턴 항공 보잉 727기가 볼리비아 라파스의 엘알토 공항에 접근 중 일리마니 산 정상 부근에 충돌했다.
사고 다음날 볼리비아 공군은 추락한 보잉727기를 해발 5900미터 높이의 일리마니산 정상 근처에서 찾아냈다.
하지만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서 구조대의 접근이 어려웠다.
이스턴 항공 980편 보잉 727기는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볼리비아와 에콰도르를 경유해서 최종적으로 마이애미로 향하는 항공편이었다.
19명의 승객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고, 파라과이 주재 미국대사의 부인과 이스턴 항공 직원 2명, 파라과이 유명 재벌 가족 5명이 포함됐다.
경유하는 공항인 볼리비아 라파스공항은 착륙하기에 어려운 공항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동유도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착륙하는 비행기는 조종사의 육안에 의존해야 했다. 980편을 조종하던 당시 조종사는 라파스 공항에 몇 번 착륙해 보지 못한 비행사로서 공항 인근 지리에 어두웠다.
사고지역에서의 시신회수와 비행기록장치(FDR)와 조종석 음성기록장치(CVR)의 회수는 볼리비아 당국의 비협조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미국 대사관에서는 볼리비아 전문 산악인 베르나르도 과라치와 보조 산악인 2명을 고용해 현지에 올랐다.
그들은 추락 이틀 후에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색팀은 여행 가방, 조종석에서 나온것으로 보이는 서류, 악어가죽, 신발 등을 발견했지만 시신이나 사고해결에 단서가 될 블랙박스는 찾지는 못했다.
의심스러운 점은 볼리비아 당국이 사고 현장에서 돌아온 수색팀을 억류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들은 헬리콥터로 공항에 끌려가 다시 심문을 받았다. 베르나르도 과라치는 조사과정에서 볼리비아군이 이 사고에 대해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사고 후 두 달 뒤인 1985년 3월, 또 다른 민간 조사대가 충돌 현장에 도착하였다.
조사팀은 잔해와 흐트러진 수하물등을 발견했지만, 그들의 주요 목표였던 블랙박스를 찾지는 못했다.
조사가 늦어지자, 답답한 희생자의 가족 중에 직접 수색에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1985년 7월, 희생자 가족인 주디스 켈리는 추락 현장에서 사비를 들여 수색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980편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별다른 소득 없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스턴 항공에게 더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정치권에 호소했다.
정확한 사고원인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던 이스턴 항공 보잉 727기의 추락사고는 여러 음모론과 소문을 낳았다.
첫 번째, 항공기 고장으로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설
두 번째, 조종사가 라파즈 공항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긴 사고라는 설.
세 번째, 안데스 산맥의 갑작스러운 기상변화에 의한 사고라는 설.
위에서 열거한 흔히 있을수 있는 항공사고의 원인 이외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음모론적 가설도 있었다.
첫 번째 음모론으로는, 파라과이 최고 재벌인 마탈론 가문과 적대시하는 관계인 파라과이 마피아가 비행기를 폭파시켰다는 설.
두 번째 음모론으로는, 이스턴 항공이 마약 밀매에 활용되었다는데, 파라과이 주재 미국 대사가 마약밀매를 차단하려 하자 미국대사를 제거하려고 마약밀매조직이 비행기를 폭파했다는 것. 미국대사는 탑승 예정이었으나 직전에 계획을 바꿨다. (대사의 아내는 비행 중에 죽었다.)
이스턴 항공이 마약을 운반하는데 이용됐다는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스턴 항공의 수화물을 통해 남미에서 마이애미로 300파운드의 코카인을 매주 배달하는 데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밝혀졌다.
과연 일반적인 사고인것인지 고의적이 폭파인지 아직도 의문이 가라앉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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