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메리 피어시
1866년에 태어난 메리 피어시는, 1890년에 한 여성과 그녀의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세기의 재판이라고 할 만큼의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속에서 메리피어시는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많은 호사가들은 메리 피어시가 '잭 더 리퍼'라고 믿으며, 많은 범죄학자들도 메리 피어시가 잭 더 리퍼라고 의심하고 있다.
잭 더 리퍼는 누구인가? 잭 더 리퍼는 19세기후반 영국을 떠들석하게한 연쇄살인마이다.
치정에 얽힌 살해극을 한 메리 피어시가 사실은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라는 주장이다.
메리 피어시는 1866년경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 녀의 원래 이름은 메리 엘리노어 휠러이다.
메리 피어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목수인 존 찰스 피어시와의 같이 살게 된다.
비록 메리와 존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메리는 존의 성을 따서 자신의 성을 피어시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메리와 존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메리는 결국 존을 떠나, 다른 남자 프랭크 호그를 만나서 동거하게 되었다.
프랭크에게는 피비 스타일즈라는 여자가 있었고 프랭크와 피비 사이에 임신한 아이가 있었다.
메리는 처음에 이 소식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프랭크는 이미 피비스타일즈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메리와의 은밀한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둘 사이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피비 스타일즈가 딸을 낳은 직후, 프랭크의 관심은 온통 피비와 딸에게 집중되었다.
메리는 프랭크를 뺏기기 싫어했다. 메리는 프랭크의 법적 아내로서의 피비의 공개적인 지위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메리는 1890년 10월 24일 자신의 집으로 피비를 초대하였다.
이후, 이웃들은 메리의 집에서 들려오는 비명, 유리 깨짐등과 같은 소리를 듣고 이웃들 중 한 명이 울타리 너머로 메리에게 별일 없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마치 아무일 없다는듯이 별다른 대답도 없었고, 이후에 메리의 집은 어둠이 깔릴 때까지 조용했다.
같은 날 저녁 7시, 한 여성의 시체가 쓰레기 더미 근처에 있는 어떤 포장도로를 따라 던져진 채 발견되었다.
머리에 상처가 있었고 목에는 깊고 치명적인 상처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질식사한 것으로 보였다. 당국은 그 시체가 피비와 그녀의 아기의 것이라고 단정 지었고, 경찰은 재빨리 메리를 체포했다.
이 사건은 종결되었고, 메리는 1890년 12월 23일에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이대로 마무리되는 듯한 사건은, 1939년 작가 윌리엄 스튜어트가 메리가 사실 잭 더 리퍼라고 주장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피비가 입은 목 부상과 리퍼 희생자들의 목 부상과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즉, 같은 사람의 솜씨라는 것이다. 이후, 윌리엄 스튜어트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논란을 불러왔다.
과연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는 메리 피어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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