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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않는 사건사고

프랭클린원정대의 비극

by 리들맨 2020. 5. 22.

북극에서 사라진 탐험대

식민지 개발과 경영이 격화되던 19세기 영국은 대서양에서 북극을 건너 태평양으로 가는 빠른 항로를 찾고 있었다. 1845년 영국을 출발한 존 프랭클린 선장이 이끄는 영국의 북극항로개척 원정대는 에레버스호와 테러호라는 두 척의 배를 타고 북극으로 출발했다.

 

     프랭클린원정대 이리버스호 ⓒWikipedia public domain

영국 해군 장교이자 경험이 풍부한 항해가이자 탐험가인 프랭클린은 이전에 세 번의 북극 탐험을 수행했고,  그의 네 번째의 북극원정이 마지막이 될줄은 몰랐다.

북극항로를 찾아 항해하던 프랭클린원정대는, 총 129명의 장교와 선원들로 구성되었다.

 

 

 원정대 대장 프랭클린경 ⓒWikipedia public domain

 

 

북극해를 향하던 원정대는 캐나다 북극의 윌리엄 섬 근처 빅토리아 해협에서 얼음으로 갇히게 되었고, 1년 이상 움직일수 없었다.

봄이 되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고 이후, 에레버스호와 테러호를 버리고 걸어서 남하하기로 하였다.

 

   

그 무렵 프랭클린과 거의 24명의 다른 사람들이 죽었다. 프랭클린의 부관 프랜시스 크로지에와 에레버스호의 선장 제임스 피츠제임스가 이끄는 생존자들은 캐나다 본토를 향해 출발했고, 전원 실종된 채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원정대가 실종되자 프랭클린의 아내인 제인 프랭클린 부인 등은 영국정부에 수색을 요구하였고,

1848년 실종된 탐험대를 찾기 위한 수색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프랭클린은 탐험가로서의 명성이 높았으며 연일 그의 실종이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수색을 펼쳤다. 많은 포경선들이 수색에 참여하였고,  1850년경에는 11척의 영국 선박과 2척의 미국 선박이 이 수색에 참여했다.

 

영국정부는 실종된 원정대를 찾기위해 보상금을 걸었다  ⓒWikipedia public domain

 

수색에 나선 배들 중 몇 척은 세 명의 선원의 무덤과 실종된 원정대의 몇가지 유물을 찾는데 성공하였다.

 

1848-54년 존 리처드슨과 존 래, 1857-59년 프란시스 매클린톡, 1860년대 찰스 프랜시스 홀, 1878-80년 프레데릭 슈왓카 등 탐험가들이 이끄는 탐험대는 탐험대에서 영국으로 두 사람의 유해를 포함한 유물을 발견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일련의 과학 연구는 탐험대원들이 상당기간 살아남아 있었다는 증거를 찾았다.

저체온증, 기아, 비타민결핍의 괴혈병을 포함한 질병과 적절한 의복과 영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혹독한 북극의 환경은 원정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또한, 시신의 뼈의 일부에 베인 자국을 분석한 결과 원정대원이 사망자의 시신을 먹었을 것으로 조사 되었다.

 

2014년 캐나다 파크스가 이끄는 캐나다 수색팀은 모드만 동쪽에서 에레버스호의 난파선을 발견했다. 2년 후, 북극연구재단은 킹 윌리엄 섬 남쪽에 있는 테러호의 잔해를 발견했다.

현재 침몰된 잔해가 발견된 지역에서의 연구와 수중 탐험은 현재 진행 중이다.

 



실종당시 영국 언론은 탐험대의 실패와 식인 풍습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을 영웅으로 묘사했다.  그의 고향 런던 스필스비에서, 그리고 태즈메이니아에서는 그의 동상이 북서항로의 발견으로 그를 칭송했다.

프랭클린의 잃어버린 탐험은 텔레비전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는 물론 노래,  단편소설, 소설 등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다. 프랭클린 그 자신은 실종 되었지만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

 

 

 

프랭클린원정대의 실종을 다룬도서 ⓒama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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