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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않는 사건사고

사라진 비행정

by 리들맨 2020. 5. 29.

태평양에서 사라진 비행정은 일본군에 납치당했는가?

 

항공기의 발달로 항공여행수요 늘어나게 된 1930년대, 팬아메리카 에어웨이라는 회사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비행정 노선을 개설하게 된다. 이 노선은 미국 서부와 하와이, 괌, 동남아시아, 중국 등을 연결하는 항로인데, 바다 위에 내려앉을 수 있는 비행정은 넓은 태평양을 건너는 수단으로써 이용되게 되었다.

 

그중 하와이클리퍼는 1935년에 만든 단 3척의 상업용 비행정 중 하나로 태평양 횡단 고급 항공기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계되었다. 

 

 

하와이클리퍼 비행정  SDAS_ Museum Archive/Public Domain

 

 

바다 위에 뜰 수 있도록 기체 자체에 거대한 부력재을 갖춘 이 비행정은 수상이나 육지 어디서나 이착륙을 할 수 있었다.

제작사는 다른 항공기에서 보기 힘든 호텔 같은 호화로운 숙소를 기체 내에 설치하였다.

 

1938년 7월 28일, 9명의 승무원과 6명의 승객을 태운 하와이클리퍼 #229편이 캘리포니아 아라메다를 출발하여 호놀룰루, 미드웨이, 웨이크, 괌을 경유하여 마닐라로 향하고 있었다.

 

하와이클리퍼에는 얼 볼드윈 맥킨리 박사, 조지 워싱턴 대학의 의학 학장 프레드 C 박사, 식물 병리학자 마이어 등 저명한 사람들이 탑승하였다.

 

 

하와이클리퍼 비행정  SDAS_ Museum Archive/ⓒPublic Domain

 

 

하와이 클리퍼는 1938년 7월 28일 현지시간으로 11시 39분 태평양 횡단 마지막 구간인 괌을 출발했다. 마지막 무선 교신은 3시간 27분 후였는데, 필리핀 해안에서 565마일 떨어진 구름 층과 불안정한 기류를 통과 비행 중이었다고 보고했다. 이 교신을 마지막으로 하와이 클리퍼는 태평양 상공에서 사라졌다.

 

 

하와이클리퍼가 실종되자, 미국은 태평양 해역에서 수상 선박과 항공기를 동원하여 강도 높은 수색을 시작했다. 1938년 7월 29일에 미군 당국은 항속거리 1000마일의 마틴 폭격기 6대를 급파하고, 동원할 수 있는 선박을 총동원하여 하와이클리퍼의 마지막 보고된 위치를 수색했다.

 

 수색에 참여한 메익스호 ⓒPublic Domain

 

 

미 육군 수송선 메익스 호도 현장으로 급파되어, 바다 위에 여러 개의 서치라이트를 사용하고 주기적으로 신호용 로켓을 발사하며 수색에 열중하였다. 
7월 30일, 메익스호는 마지막으로 보고된 항공기의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50마일 떨어진 둘레 1500피트의 기름띠를 찾아 내어 기름띠 시료를 분석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미스테리한 실종사건은 미궁에 빠져버렸고 15명의 승무원과 승객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실종된 하와이클리퍼 비행정  SDAS_ Museum Archive/ⓒPublic Domain

 

 

결국 미군은 실종된 비행기에 대한 수색을 중단했다. 조사관들은 어떻게 그 여객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는지 당황했다. 보통의 항공기와는 달리, 하와이클리퍼는 비상시 바다 위에 내릴 수 도 있고 충분한 부력재 때문에 흔적 없이 가라앉기는 매우 어렵다.

 

하와이클리퍼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음모론도 주장한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하와이 클리퍼가 일본군에 납치돼 승객과 승무원이 전원 살해되었고, 기체는 일본이 점령 중이던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트럭섬으로 보내져서 일본군 비행정 설계에 이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당시는 2차 대전 직전으로, 일본은 하와이클러퍼와 같은 대형 비행정이 필요했지만 기술 부족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처지였다.  일본군이 개입한 것은 과연 사실일까?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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