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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역사

알리스터 크로울리의 악마적 기행

by 리들맨 2020. 6. 18.

알리스터 크로울리는 악마 추종자였는가?

 

알리스터 크로울리는 1875년 영국의 워릭셔에서 신앙심이 두터운 부모의 아이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의 이름은 에드워드 알렉산더 크로울리이다.


그의 부모의 삶은 오직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었다. 돈을 쓰는 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종교활동 이외에는 근검절약하며 살았다. 물론 어린 에드워드에게도 간소한 삶을 주문했다. 필요 이상의 옷이나 음식 사치 등은 죄악으로 취급했다.

 

어린 시절 에드워드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따라서 밖에서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성경 읽기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아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어린시절 크로울리   Magikritualnacht/CC BY-SA 3.0


에드워드가 11살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힘든 집안 사정으로 고생하였다. 이로 인해 아프기도 하였다. 삼촌의 도움으로 시골로 거처를 옮긴 에드워드는 건강이 좋아졌으며 다시 도시로 돌아왔을 때는 좀 성격이 달라져 있었다. 반항심으로 가득 찬 10대로 돌변했다고 한다.

그는 종교에 얽매이기보다 자기 자신의 의지로 살기 원했다.  그의 이런 행동에 어머니는 충격을 받았고 그를 요한계시록의 괴수가 되었다고 한탄했다. 화가 난 그는 어머니를 괴롭히기 위해서 어머니의 침대에서 가정부와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 

 

어머니는 가정부를 해고했으며, 에드워드의 주장으로는 그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창녀가 되었고 잭 더리퍼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스스로의 의지의 삶을 살기 위해서 악마와 교감할 필요가 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영혼을 차지하기 위해 신과 사탄이 싸웠다는 주장도 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주변을 놀라게 했다.  

 

대학 졸업 후 크로울리가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으며 이 재산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창녀를 고용하여 곁에 두는 일과 오컬트에 관한 책을 사 모으는 일도 있었다. 

또한, 에드워드라는 자기의 이름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알리스터 크로울리라고 칭했다.

 


그는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해서 그림과 시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문학작품이기 보다는 통속적이고 더러운 시를 쓰기도 했으며 가명으로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오컬트에 대한 열정과 마법의 실재에 대해 믿었다. 이를 바탕으로 "황금빛 새벽"이라는 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거기에는 유명한 시인 윌리암 예이츠와 드라큘라의 작가 브람 스토커도 있었다.

 

그 모임에서는 고대의 이집트의 문서를 해독하고 번역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것을 통해 그들은 천사들과 소통하거나 마법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황금빛새벽모임에서 오시리스차림의 크로울리  Public Domain

 

크로울리는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혼과 교감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영혼과 교 감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토론과 요가 명상 만트라(자기 자신에게 거는 일종의 영적인 주문)가 필요하다고 한다.  

 

크로울리는 흑마술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황금빛 새벽의 모임에서는 크로울리가 악의 힘을 빌리려 한다고 그를 매우 우려하였다.  

 

한편, 등산가 이기도 한 알리스터 크로울리는 히말라야 같은 고산지대의 등반을 좋아했다. 등산에 아낌없이 돈을 썼지만, 같이 등정하는 등반팀과 항상 불화를 가져왔으며, 등산 과정에서도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 

 

 

1902년 K2 등반중 크로울리   Jules Jacot Guillarmod/Public Domain

 

무엇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악마와 접촉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크로울리는 그가 24세 때 스코틀랜드의 로크네스의 저택을 구입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악마 소환술을 매일같이 시도하였지만, 소환술은 실패하였다고 전해진다. 나중에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가 크로울리의 저택을 구입하였고 지미는 저택이 크로울리의 악마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크로울리는 결혼하여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자신의 어깨 위에서 수호천사 아이아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수호천사는 자신의 말을 받아 적으라고  했고 크로울리는 3일간 받아 적어서 유명한 "법의서"를 출판했다. 이 책에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너의 뜻대로 행하라 그것이 곧 법이 될지이다"

 

 

1910년경의 크로울리의 부인 로스와 딸 롤라  Public Domain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경험담을 황금빛 새벽 회원들과 공유했는데 회원들은 크로울리가 수호천사가 아니라 악마와 통했다고 비난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크로울리는 황금빛 새벽에서 쫓겨났다. 

이후 크로울리는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된다. 그는 그 자신만의 컬트인 텔리마를 창시했다. 그는 이탈리아로 거처를 옮겨서  마약을 하거나, 동물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거나, 수간(동물과 성관계)을 벌이는 등 반사회적인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였다. 주변 주민들은 그 장소를 악에 저주받은 곳이라고 했다. 결국 그는 이탈리아 당국에 의해 추방되었다.

 

 

지금까지 방치된 이탈리아의 크로울리 거처    Youtube screen grab

 


이후 크로울리는 미국을 방문하게 되는데 많은 추종자가 생겼다. 크로울리는 성관계 시 오르가슴에 우주가 반응한다고 주장했다. 크로울리는 헤로인에 중독되었고 건강을 조금씩 잃었다. 

그는 재산을 거의 탕진하게 되었고 언론에서는 그를 흑마술사라고 폄하였고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크로울리는 만성적인 기관지염과 심근경색으로 1947년 사망함으로써,  그의 기행으로 점철된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평생 남들과 다른 기행을 일삼은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악마스러운 사람이라는 악명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과연 악마 주의자나 악마 추종자일까? 아니면 모든 관습이나 상식을 거절한 자유주의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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